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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림프종 투병일기

림프종 투병일기 #2 - 입원, 수술 그리고 확진

19년도 5월 18일.


치질인 것 같다며 관장만 하고 직장 내시경을 하자던 소화기내과 과장님은 대장 전체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원래 대장내시경을 하려면 전날 미리 장 청소 약을 먹고 모조리 물설사로 배출한 다음 해야 되는데

나는 다행인지 대장 상부에서 계속 피가 흘러나온 덕분에(?) 장이 너무 깨끗해서... 내 의사와 동의 없이 바로 대장 전체를 검사 할 수 있었다.

내게 묻지도 않고 바로 맨정신 대장 내시경을 하시는 걸 보고.. 그만큼 내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항문에서 대장을 거쳐 소장에 거의 다 와갈 때쯤.. 이유를 찾지 못한 의사 선생님은 간호사에게 급하게 콜을 하시고 위내시경도 해야 할 것 같으니 빨리 준비하라고 하셨는데.. 이때 너무 무서웠다. 대장에서도 찾지 못하면 소장이나 위, 다른 장기에서 출혈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대장내시경 힘들었다. 그냥 아팠다. 맨정신으로 못할 정도는 아닌데 엄청 힘이 들어가고, 내시경이 끝난 이후가 정말 힘들었다.



대장 완전 처음 부분 맹장 쪽까지 올라갔을 때 지름 4~5센티만 한 혹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는데.. 수면 내시경이 아니여서 직접 내 눈으로 확인을 했다.



조직검사를 위한 약간의 대장 살점을 떼어내고, 지혈제를 뿌리고..
과장님은 피가 멈추지 않을 경우에 심각해질 수 있으니 입원을 하라고 하시면서 바로 병실을 알아보신다.
혈액검사와 X-ray를 찍고.. 아픈 배를 부여잡고 겨우겨우 입원 수속을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찾은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소리를 들은 나는 그제야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걱정시키지 않으려 했던 행동이 더 가족들을 걱정하게 만든 셈이다.

 

참 사람 사는 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

 

 

영양제와 수액만 맞고 3일을 굶었다. 금식으로 물도 마시지 못했다.
대변을 보고 피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했는데 이미 내시경을 했던 날 오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는 대변으로 나올 것도 없었다.
3일 뒤 오전 겨우 대변을 보고 점심부터 식사했다.
어찌나 맛있던지...ㅎㅎ 병원밥 세상 맛있다.

 

소화기내과 의사 선생님은 종양의 크기가 너무 커서 내시경으로는 떼어낼 수 없다며 외과로 수술 일정을 잡아주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난 외과 수술을 받게 되었다.

내시경으로 떼어낸 조직 검사 결과는 단순 염증이었다. 얼마나 다행이라 생각했는지...
수술만 잘 끝나면 괜찮겠지...? 너무 걱정하지 말자. 수술 잘 끝내자! 잘 끝내고 예전처럼 지내자 다짐했다.

담당해주신 수술 집도 외과 과장님께서는
"단순 염증이어서 괜찮아요. 수술하고 떼어낸 조직으로 조직검사를 다시 하겠지만, 이게 최악의 경우에는 림프종일 수 있는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걱정 말고 수술 잘해봅시다."
안심이 되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같은 거였지...

그날 저녁 큰 걱정 없이 퇴원했고. 같은 주 목요일에 재입원, 금요일 수술 일정을 잡았다.
장 일부 절제 + 맹장까지 덤으로 떼어내는 수술

목요일 오후에 입원하고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외과 의사 선생님은 어차피 다 빼내야 하니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하셨다.
죽으로 반만 먹고 그날 9시쯤부터 밤 12시 정도까지 장 수술을 위해 장세정제를 먹었다.

 

이건 정말.... 이런 망할........
물도 따로 엄청나게 먹어야 되고 가루 두 개를 섞어서 저 통에 물이랑 섞어 먹는데 4번을 몇십분 간격으로 계속 먹어야 한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곤욕이다. 세상 이렇게 힘들 줄이야....
먹다가 토했다. 더럽게 맛없다. 간호사는 레몬 맛이라 그나마 먹을 만 해진 거라고 하는데... 이게? 으.....

그렇게 힘들게 장 청소를 하고.. 정말 쫙쫙 잘 빠지더라... 아침에도 쫙쫙.......


수술 시간이 다 되고. 수술 침대가 올라왔다. 병원에는 수술침대나 휠체어를 끌어주시는 남자분들이 계신데 직명을 모르겠네... 고마우신 분들.

입원 생활을 오래 하고 나니 알게 되었는데 모든 간호사 의사 병원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은 참 고마우신 분들이다.

수술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보고 수술방으로 들어갔다.
수술방은 추웠다.
수술방에는 사람들이 참 많았고, 젊은 사람들도 많았다.
마취과 선생님께서 안정되는 말씀을 하시면서 마취제가 들어간다고 말씀해 주시고 잠시 후 정말 거짓말처럼 기억이 사라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일어나셔야 한다는 간호사 목소리에 깨어났는데 정말.. 너무 아프고 너무 춥고...
소변이 마려워 죽겠는데 일어나지는 못하겠고...
간호사한테 소변이 마렵다니까
"그냥 싸세요"
"네? 그냥 싸라구요...?"
"네. 소변줄 했으니까 그냥 싸면 돼요."
이런 생소한 기분을 봤나...? 마취도 덜 풀렸는데 이 대화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수술했던 배가 너무너무너무너무 아팠다. 입원실까지 수술 침대로 와서 입원실 침대에 옮겨지는데 간호사들부터 실습생들까지 몇 명이 붙어서 내 아래 깔려있던 침대보를 들어서 날 옮겼다. 이때가 진짜 아팠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신음이 나왔다.. 그리곤 추워서 오들오들


보험 적용이 안 되는 마약성 진통제를 하겠냐고 했는데 그냥 진통제로도 버틸 수 있을 거라 해서 신청하지 않고 일반 진통제를 맞았는데 두어 시간 지나니 그나마 좀 통증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제야 들어오는 가족들의 모습.


또다시 금식의 시간. 하루하루 검사와 치료와 소변 체크, 피주머니 비우기..
하루하루 걷기. 누워만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병원 복도 왔다 갔다... 이것도 처음에는 엄청 힘들었다.
수술 다음 날 X-ray 촬영하고 오라는데 하늘이 노랗게 돌아 버리는 줄;;
첫 검사 때부터 계속된 혈관 주사 때문에 팔이 성하지 못했다.

 

 

 

주말을 보내고 차주 월요일쯤 되었을 때 수술 집도를 해주신 과장님이 오셨는데 별말씀 안 하시고 내려가시고 내일 자기 진료실로 와서 실밥을 빼자 하셨고, 그렇게 다음날 진료실로 갔다.

"보호자는 없어요? 혼자 왔어요?"

간호사도 그렇고 과장님도 그렇고 왜 보호자를 찾지? 라고 생각했는데
실밥이랑 피 주머니 빼고 난 후 앉아보라고 하시고는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사실 이전에 결과가 나왔었는데 갔을 때 가족들이랑 즐겁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얘기를 못 했어요..."

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알아듣지 못 하는 말을 계속하셨다.
그 많은 말씀 중에 내가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알아들은 건...

림프종, 수많은 종류 중에 B세포, 내가 아는 분이 계시니 거기에 연락해주겠다.
이 정도였다.

 

 

"그러니까.. 지금 제가 암인가요...?"

내가 말 한 첫마디. 

 

 

하늘이 무너졌다..

 

 

"완치는 되는 병인가요?"

이렇게 물으니 과장님은 말을 아끼셨다.
[완치]라는 단어는 쓰지 않으셨다.


"의술이 많이 좋아져서 요즘은 결과가 좋아요. 오늘 퇴원해도 되지만 지금 퇴원하고 집에 가도 힘들 테니 정신 좀 추스르고 내일 퇴원하세요"


"... 나가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 북적거리는 병원 한가운데 대기 의자에 앉아서 30분 정도 생각했다.
길게 생각하는 것도 사치였다.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먼저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마음 약해지기 전에 모든 친구에게 싹 다 카톡을 보냈다.
사실 숨긴다고 숨길 수 있는 병도 아니고..
이때는 이러다가 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서 알려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다시 과장님을 찾아가 퇴원하겠습니다. 말씀드리고..
병실로 올라가 짐을 챙겼다.
생각보다 덤덤했다. 아니, 가족들 생각에 덤덤하게 생각하자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했다.
정들었던 같은 병실 환자분들께 한 분 한 분 인사를 드리고
더 큰 병인걸 알게 되어서 큰 병원으로 간다고 했더니 다들 걱정을 해주셨다. 잘 치료 받아라.. 잘 될 거다..
짐을 챙기고 퇴원 수속을 하고 병원을 나섰다.





짧게 끝날 줄 알았던 내 병원 생활을 끝내지 못하고
난 마라톤 뛸 준비를 했다.